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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사와 나오키 - 봉준호 대담 본문

아무거나 번역

우라사와 나오키 - 봉준호 대담

Kanna Kim 2018. 1. 26. 03:37

본 인터뷰는 2006년 7월 31일, 그러니까 약 12년 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일본 시사회 당시 봉 감독과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 씨와의 주간 피아(ぴあ) 대담을 번역한 자료입니다. 어딘가에 번역본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기가 힘들어 직접 구글번역기와 짧은 일본어 문법 지식으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후 봉준호 감독은 '20세기 소년'의 영화화를 넌지시 요청하였다지만, 우라사와 작가의 개입이 강할 것이라는 말에 결국 포기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루어졌다면 상당히 흥미로웠을 듯 합니다. 의역과 오역이 많으니 어색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ONSTER', '20세기 소년', '괴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으니 주의해주세요. 또한 해당 작품의 사전에 읽지 않으신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본문은 2016년에 번역한 것을 2018년에 교정한 버전입니다. (원문 링크)



피아 독점 대담

우라사와 나오키 X 봉준호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괴물'의 감독, 봉준호와 'MONSTER', '20세기 소년'의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두 창작자의 대담이 '피아' 단독 주도로 실현되었습니다. 우연히도 '괴물'이라는 동일한 타이틀의 작품을 발표한 그들이, 자신들끼리 지닌 의외의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취재 : 토도로키 유키오,  촬영 : 타카노 마사오키)


PROFILE

우라사와 나오키

1960년, 도쿄 출생. '82년, 쇼가쿠칸 신인 코믹 대상을 수상, '83년에 'BETA!!'로 만화 데뷔.

그 후, 'YAWARA(야와라)'('86~'93년), '마스터 키튼'('88~'94년), 'Happy!(해피)'('94~'99년), 'MONSTER(몬스터)'('94~'01년), '20세기 소년'('99~'07년), 'PLUTO(플루토)'('03~'09년), '빌리 배트('08년~'17년)' 등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

현재 '마스터 키튼 리마스터' 연재중.


봉준호

1969년, 대구 출생. 대학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

졸업작 '지리멸렬'이 벤쿠버영화제, 홍콩영화제에 초대.

2000년에,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 데뷔.

'03년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기반으로 한 '살인의 추억'을 발표, 한국에서 500만명의 관객을 기록하는 대흥행작이 되었다.

'06년에는 '괴물'을 발표,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였다. 이후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을 발표.

현재 '기생충'를 감독 중.


INTERVIEW

이번 대담은, 봉 감독님의 방일 3일 전, 평소 감독이 우라사와 씨의 만화의 광팬임을 알고 있던 영화 배급사가, 우라사와 씨를 '괴물'의 시사회에 초대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나라는 달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봉 감독님의 작품에 반한 우라사와 씨는 대담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고, 위클리 피아에서 독점 대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음은 7월 31일, 도쿄도내 모 호텔에서 이루어진 '세기의 대담'의 전문입니다.


――아까 첫 대면 때, 봉준호 씨가 매우 기뻐하는 얼굴이었습니다.


봉준호 : 지금도 정말로 긴장됩니다. 예전부터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많았습니다.


우라사와 : 감사합니다.


봉준호 :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일하십니까?


우라사와 :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요 20년간 자는 시간이랑 식사 시간 빼고는 일만 하고 있었네요.


봉준호 : 따로 휴가나 외출은 안 나가시나요?


우라사와 : 주간연재가 한 달에 4번, 격주간연재가 한 달에 2번, 마감이 총 6번이기 때문에, 주 1회마다 마감을 내야하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봉준호 : 예전부터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어왔습니다. 약 6년 전, '플란다스의 개'는 'Happy!'를 한 손에 쥐면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습니다. 전작인 '살인의 추억'은 'MONSTER'를 읽으면서, 이번 '괴물'은 '20세기 소년'을 읽으면서 시나리오를 작성했습니다. 언제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막 이야기를 들으니, 계속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느낌이 드네요.


우라사와 : 그렇습니다. 저도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서,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 걸 느꼈습니다. 태어난 것도, 성장 과정도 다르지만, 머릿 속에서는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봉준호 : 저도 선생님의 만화를 잘 보고 있고, 특히 어둠의 묘사, 그러니까 밤 또는 '악'을 표현하는 방법에 큰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휴머니즘에 뿌리를 두는 작품은 '선'과 '악'이 대결하는 시점에서 '악'에 더 힘이 실리는 것일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꽤 그런 구석이 있기에, 'MONSTER'을 읽으면서 특히 공감했습니다.


우라사와 : 그럴지도요. 하지만 반대일수도 있습니다. '악'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자신의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유머를 추가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봉준호 : 제가 감독한 '살인의 추억'도, 미지의 범인을 형사들이 이를 쫓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MONSTER'의 1권에서 요한이 성인으로서 처음 등장한 게 공사현장 신이라 생각하지만, 그 전에 빗 속에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압도당했습니다. 9권[각주:1]도 좋아하는데, 극중극이라는 점에서 제가 어릴 때 읽은 동화가 생각나더군요, 거기서의 어둠의 묘사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악이나 어둠이란 것들에 대항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우라사와 : 악이란 건 너무 힘이 세요. 감독님의 작품, 그리고 저의 작품의 공통점은 쓸데없이 먹는 장면이 많다는 걸까요(웃음). 마구 먹어댐으로써 '악'과 싸우려 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런 감성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봉준호 : '20세기 소년'에도 등장인물이 먹는 장면이 정말로 많습니다. 특히 스토리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먹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괴물'에서도 먹는 장면을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저에게 그런 행위는 정말 중요한 모티프입니다. 약한 사람을 지키고자 먹인다던가. 이번 작품도, 송강호 씨가 자신이 구출한 남자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주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현서는 잡혀간 상태지만, 그녀도 가족의 식사에 동참하고 가족 모두에게 밥을 먹여달라고 하는 판타지한 장면도 넣었습니다. 먹는다는 행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하는 주제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20세기 소년'에서 칸나가 라멘을 먹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손에 닿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일본 라멘을 정말 좋아해서, 후쿠오카의 영화제에 갔을 때, 세 끼 모두 라멘으로 때웠을 정도여서(웃음) 라멘을 볼 때마다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우라사와 선생님의 테크닉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여러 드라마와 만화를 감상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장면 전개에 있어서 선생님은 대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면과 장면간의 연결에 관해선 그 역량이 엄청납니다. 제가 영향을 받은 부분은 스토리도 있지만, 장면 전개에 관해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플롯과 감정이 최고조에 올라가 있을 쯤에 거기서 과감히 끊어버리고 다음 전개로 넘어간다던가. 그런 게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만화이지만, 거기서 영화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영화를 보면서 이를 향상시킨 건가요, 아니면 스스로 터득한 것인가요?


우라사와 : 영화도 좋아합니다. 지금의 멋진 장면을 잇는 방법이 많으니까요. 감독님도 공감하겠지만, 수줍음이 나타나는 장면을 생각해봅시다. 이 이상 표현하면 너무 부끄럽지 않을까하는 그런 수줍음이 느껴지는 장면 말입니다. 이 수줍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봉준호 : 그 이야기,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정말 공감됩니다. 극한의 상태가 되면 에너지를 상실하는게 아니라, 마치 쇼트트랙에서 릴레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바통 터치를 할 때 뒤의 선수가 앞의 선수를 밉니다. 그런 느낌으로, 에너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장면이 에너지를 건네주면서 그 다음 장면이 시작됩니다. 즉 에너지의 이동이라는 느낌이지요. 특히 긴 스토리의 경우는 릴레이 같은 것으로, 첫 번째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건네는 느낌으로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거기에 영감을 받습니다.


우라사와 : '괴물'의 슬픈 장면에서, 딸의 행방을 모르는 가운데 합동장례를 치르는데, 거기서 웃기는 장면을 넣는 센스가 좋았습니다. '20세기 소년'에서도, 동키가 죽는 장면에서 스님이 오로지 먹기만 하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슬픈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거나, 웃기는 장면에서 슬픔이 나오는 그런 구조가 닮았습니다.


봉준호 : 웃음과 슬픔이 혼재하는 것은 동양적인 이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칸 영화제에서 합동장례 장면을 보여줬을 때, 유럽 사람들은 거기에 당황하는 것 같았어요. 웃어야하는지, 슬퍼해야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일본 분들은 또다른 반응을 해주실 겁니다.


사춘기의 이상한 경험이 걸작을 낳는다?


봉준호 : '20세기 소년'에서 놀란 것은, 이 작품에서 6~70년대의 다양한 시대가 나오지만, 초등학생 때의 주인공 패거리의 놀이 방식이 제 어린 시절과 비슷하단 것입니다. 비밀 기지를 만드는 등의 짓 말이죠. 디테일이나 감성이나 서로 많이 통할 것 같았습니다. 자주 듣는 질문이겠지만, '20세기 소년'의 묘사는 작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건가요?


우라사와 : 10분의 1 정도는요. 학교방송에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트는 장면이라던가. 체험담과 스토리를 이으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봉준호 :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도...


우라사와 : 그건 유리 겔러에요. (웃음)


봉준호 : 한국에서도 그걸 했지요. 다음날 모두가 숟가락을 만지작댔습니다. (웃음)


우라사와 : 한국에서도 했다니! 깨진 시계가 움직이게 하는 장치도 분명 온기 때문이겠지요.


봉준호 : 지금도 살아있을까요?


우라사와 : 일본의 CF에 나오고 있어요. 마이클 잭슨과 같이 나온답니다. (웃음)


――감독님이 고교 시절에 실제로 괴물을 봤다는 경험이 이번 작품의 기초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봉준호 : 한국에서도 그 이야기가 여러 기사에서 나오더라고요. 제가 고등학생 때 불량 신나인지 뭔지를 피우고 있어, 그 때문에 환상을 본 건 아닌지요. (웃음) 확실히 환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실제로 보았을 겁니다. 집에서 한강이 보이는데, 다리에서 미지의 물체가 기어오르다가 물에 빠지는 겁니다. 그게 처음 본 이미지였어요.


우라사와 : 그 이미지 좋네요.


봉준호 : 물론 그걸 이야기했다가는 괜히 괴롭힘 당할테니 차마 꺼내지도 못했지만요.(웃음) 하지만 언젠가 영화를 만든다면 이 이야기를 찍으려고 했고, 이를 간신히 실현해냈습니다. 만약 그걸 모두가 거짓말이라 여긴다면,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고 점점 나쁜 쪽으로 흘러가 '20세기 소년'의 후쿠베처럼 거짓말쟁이라 불렸을지도 모르죠. (웃음) 후쿠베가 오사카만박에 가지 않았는데도 갔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아마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어쨌든 하나의 거짓말을 완성시키겠다는 그런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거든요.


우라사와 : 저는 그거거든요. 작품에서 머리가 잘린 언덕의 집 이야기가 나오죠. 그것과 똑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괴물을 본 겁니다. 낡은 집에서 괴물을 보고 나서, 모두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거라 생각하는 것을, 작품에 넣은겁니다. 지금은 매년 시험방송에 그 장소가 나옵니다. 하지만 그걸 처음으로 입 밖에 낸 것은 분명 저일겁니다. (웃음) 18~19세 정도일까나.


봉준호 : 제가 괴물을 본 거랑 같은 경우네요. 정확히 그 당시라면 이상한 걸 볼 나잇대가 아니겠습니까?


우라사와 : 어릴 때 어른들에게 '비뚤어진 아이'로 보인단 말 들은 적 없었어요?


봉준호 : 저는 어디까지나 모범생이었어요. (웃음) 그런 적 없었어요. 겉으로는 친구와 잘 지냈지만, 뒤에서는 혼자서 이상한 짓을 했다던가.


우라사와 : 저도 그랬습니다. 뒤에서는 음흉한 짓을 했지요.


봉준호 : 만화를 그린다거나, 병에서 바퀴벌레를 기른다거나. (웃음) 또, "싫어하는 선생이 있으면 어떻게 완전범죄로 죽일까"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쓰다가 결국 발각되어 버렸지요.(웃음) 사실 그 선생은 보고 좋아했지만. 제일 처음 만화를 그려본 건 언젭니까?


우라사와 :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데즈카 오사무 선생님의 사인을 따라했어요. 그러다가 2학년 쯤에 노트에 스토리 만화를 그리고 있었죠.


봉준호 : 저도 초등학교 때 '도라에몽'을 따라한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까?


우라사와 : 그 때는 역시 반에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모두 '우라사와는 만화가가 될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될거야'라고 말하고 다녔죠. 저번에 중학교 때 문집을 찾았는데, 10년 후의 나에게 쓴 편지가 있었는데, '만화가라는게 되면 힘들어요. 바빠 죽을거예요.'라고 써져 있었습니다.(웃음) 15살에 말이죠. 제 자신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일할 거란 걸 알고 있었지요. 힘든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할까요.


봉준호 : 예언자적 기질이네요.(웃음) 마치 '20세기 소년'의 '예언의 서' 처럼.


보고싶은 작품은 남이 만들어주지 않으니, 내가 만든다


――봉 감독님은 언제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나요?


봉준호 : 제 경우는 중3 때, 평생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모아보고 다녔어요. 애니메이션이라던가, 촬영감독이라던가 그런 걸 할 생각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중학교 이후로 변한 적이 없네요. 결국은 영화감독이 되었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서툴러서 포기했지요. 하지만 지금도 그림 콘티를 스스로 짜고 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미련을 그런 쪽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우라사와 선생님에게 '살인의 추억'의 그림 콘티를 들고 왔습니다.


우라사와 : 호오, 이걸로 일본에서 만화를 그릴 수 있겠네요.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봉준호 :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어도 똑같습니다.(웃음)


우라사와 : 역시 진심으로 뭔가를 한다면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죠.


봉준호 : '살인의 추억'의 시사회를 일본에서 할 때, 마츠오카 죠지 감독(영화판 '도쿄 타워'의 감독)이 와주셔서 매우 힘을 주고 찍었다고 이야기해주시더군요. "영화 감독이란, 석탄 광산 같은 것이라 한계가 있어, 아껴 쓰는게 좋다."라고요. 그 충고를 듣지 않고 두 배 이상의 규모의 작품을 찍었는지라 지금 피로가 상당히 많이 쌓여 있습니다. 'MONSTER'도 상당한 대작인데, 이런 작품을 만든 후에 체력이 빠진다는 기분이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우라사와 : 음, 저도 한 명의 만화 팬으로서, 이런 만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상적인 만화가를 자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기일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자신도 한 명의 관객이라는 자세는 감독에게도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까다로운 관객으로서 말이죠.


봉준호 : 제 경우에는 저의 단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작품을 검토하고 다시 한 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자리 잡고 있거든요. 그리고 저도 영화광으로서,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찍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찍지 않기 때문에 직접 찍어 직접 보자는 생각이 들고요.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괴물'에서 우라사와 씨가 감동한 부분은?


우라사와 : 휴머니즘에서는 싸구려 감성이 드러나기 쉽죠. 먹거나, 자거나 하는 그런 휴머니즘이죠. 그걸 근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일어난다는 점이 기분 좋게 표현되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이란 무엇인가하는 강한 질문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봉준호 : 'MONSTER'나 '20세기 소년'을 감상하면 '선'과 '악'의 대결이 있지요. 우라사와 선생님의 작품에서 '선'이나 '악'으로 불리는 것은, 손에 닿을 것 같을 정도의 생생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선'이 '악'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이 괴롭고 힘든 싸움이란 걸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라사와 :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사회적 틀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20세기 소년'에서 '정의의 아군'이란게 나오지만, 거기서 '정의'란 무엇일까요. 그 때의 사회 정서에 따라 변하는 것이 정의이기 때문에, 우리도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 인간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봉준호 : 지금의 이야기를 포함해서, 우라사와 선생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디테일이나 기법으로 작품을 그리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로 연출하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우라사와 : 안 돼요. 하지만 만화는 연재로 시작해서 단행본으로 나오는 겁니다. 다시 돌이키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온전한 패키지로 나옵니다. 나는 완성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온다는 등의 생각 때문에 결국 체념해버립니다.(웃음)


봉준호 : 완벽주의자시네요.


우라사와 : 그러면 감독님도 완벽주의자인가요?


봉준호 : 확실히 그렇지만, 주위의 의견에 따라 여기서 끝낼까 하는 것도 있고, 더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아서, 그렇게 끝내는 겁니다.


우라사와 : 하지만 리듬이 좋으니까 그걸로 OK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꽤나 그래요. 순간, 어쩐지 장면이 바뀌면 그 때 히야~하고 웃으면 그걸로 좋은 겁니다.


봉준호 :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하지만 미묘하게 음악이랑 시에 가까워진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가능하다면 선생님과 7시간 정도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20세기 소년'의 다음 권이 늦어지기 때문에 이 쯤에서 그만두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우라사와 : 끝나면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1. 'MONSTER'의 중심이 되는 핵심 극중극인 '이름 없는 괴물'이 등장하는 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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