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판교] 야바톤 - 한국에 도착한 나고야의 별미

방문일 : 2018년 8월 10일

일본에서 나고야는 B급 음식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타 지역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음식이 많이 있기 때문인데요, 나고야 지역 가이드북에서는 나고야를 먹으러 가는 도시로 칭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넓직한 면 요리인 키시멘, 대만에는 없다는 타이완라멘, 아침에 커피를 시키면 빵을 주는 코메다 커피, 네 번 나누어 먹는다는 히츠마부시 장어덮밥, 짭짤한 닭날개 튀김인 테바사키 등이 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미소카츠"일 것입니다. 적된장소스를 돈가스에 뿌려서 먹는 나고야의 명물 음식인데요, 나고야 여행가는 사람 중에서 미소카츠 안 먹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미소카츠에 대한 첫 인상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게, 처음 먹었던게 에키벤이었고 그것도 맛이 상당히 없는 편이었거든요. 원래는 KYK나 야바톤에서 에키벤으로 먹으려고 했는데, 이른 아침인지라 문이 닫혀있어서 나고야역내 에키벤 가게에 가서 먹었는데 반찬은 하나같이 맛없고, 밥은 너무 시고, 소스 양은 적고, 고기는 차갑고 퍽퍽해서 총체적으로 별로였습니다.

(문제의 미소카츠 에키벤.)

따라서 언젠가 나고야에 가면 제대로 된 미소카츠를 야바톤이나 KYK에 가서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며칠 전에 판교 현대백화점에 야바톤이 입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주지가 서울 도심이어서 판교까지 가기도 애매한 거리이고, 가격도 19,000원이라니 생각보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갈까 말까 고민이었는데, 개업후 몇 주간 일본쪽 경영진이 상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현지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때가 이때다 싶어 무작정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중간에 을지로에서 9401로 환승하니까 의외로 판교까지 가는 시간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더군요. 철도로 부천가는 것보다 더 빠른 것 같습니다. 광역버스라서 교통비는 좀더 나가긴 하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빠르면서 좌석도 편하죠. 낙생육교 정류장에 내리니 옆에 바로 현대백화점이 보이더군요. 판교는 처음 가봤는데, 괜히 잘나가는 신도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통도 편하고, 주거환경도 잘 되어있고. 다만 집값이 좀 나가긴 하더군요.

찌는 날씨이지만 다행히도 이날은 하늘이 맑더군요. 하늘은 푸르고 구름이 백화점 벽에 비칩니다. 판교 현대백화점은 수도권에서는 최대 사이즈의 백화점이라고 하던데, 겉에서 봐도 상당히 크더군요. 부산 센텀시티의 신세계 백화점은 세계최대이지만 너무 커서 다리가 아픈 반면, 판교 현대백화점은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냥 제가 덜 돌아봤기 때문일수도요. 집에서 최근거리 백화점이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인데 거기보다도 당연히 더 커보이고요. 서울 도심이 아니라 판교IC 근처인지라 그나마 복잡함은 덜해보입니다. 근처에 대형 번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량도 많지는 않은 편이고, 넓은 광장도 있으니 특히 그렇습니다.

야바톤은 백화점 지하1층에 있습니다. 보통의 백화점이 그렇듯이 지하1층에는 푸드코트가 들어가있지요. 각 백화점별로 푸드코트 유치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인데, 특히 현대백화점은 여기에 정평이 나 있습니다. 판교점은 자체브랜드인 밀탑을 비롯하여, 오사카의 유명한 롤빵인 몽슈슈, 홍석천의 마이치치스, 마이타이 등 수많은 유명 음식점들이 지하에 입점해있더군요. 야바톤도 이 라인업의 일원이 된 것이고요. 평일 점심이지만 야바톤 말고도 다른 가게에도 사람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나마 줄은 안 서던데,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줄을 꽤 섰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여느 가게처럼 빈 자리가 보여서 앉으려고 했는데, 점원분께서 대기선에서 선주문을 하고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포화된 상황이 아니었는지라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하지만, 백화점의 협소한 매장 특성상 선계산을 통한 빠른 회전을 위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뭐 어떤 방식이든 따로 불편하지는 않으니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기선에 서서 안내판을 받았습니다.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은 아니기 때문에 설명을 곁들이시더군요. 혼자 갔기에 주문 후 카운터석으로 안내받았습니다.

점원의 권유도 있고, 처음 가게에 갔으면 역시 대표메뉴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로스 철판 돈카츠를 주문했습니다. 야바톤의 대표 메뉴이며, 1일 한정판매에 19,000원의 높은 가격입니다. 보통 한국에 외국계 식당이 들어오면 가격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야바톤의 경우에는 일본의 가격대(정식기준 1,836엔) 그대로 들어왔네요. 500원을 추가하면 파 토핑이 올라간다는데 일단은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하면 파가 들어가는 것도 또 하나의 별미라더군요. 다만 저가메뉴인 로스쿠시카츠가 없고 맥주가 없는건 아쉽습니다. 맥주 하나 걸치면서 먹으면 딱 좋은 음식인데 아무래도 백화점이니 분위기에 맞지 않고 회전율도 느려지기 때문이겠지요.

주방은 오픈키친 방식입니다.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의 대부분이 오픈키친을 채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테이블과 주방과 경계가 모호해졌을 정도입니다. 적어도 카운터에서는 조리과정을 쭉 지켜볼 수 있습니다. 돈까스집으로는 롯폰기의 부타구미와 비슷한 주방이더군요.

테이블에는 고춧가루와 깨소금, 연겨자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왼쪽의 안내판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먹어보라는 의도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방법으로 먹어보라는 건 똑같은 나고야 명물인 히츠마부시 같습니다. 히츠마부시도 그냥 먹고, 와사비와 먹고, 오차즈케로 먹고, 마지막으로 가장 맛있었던 방식으로 먹지요.

앞치마는 따로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야바톤의 마스코트인 돼지에 천과 끈을 매단 캐릭터에 머리부분만 없애놓은 형태입니다. 돈까스 먹는 야바톤 돼지가 되라는 뜻인가? 재밌게도 여성 손님에게는 위의 디자인이 아닌 여성형 캐릭터의 디자인을 내놓습니다. 소소한데서 센스가 엿보입니다.

이윽고 나온 로스 철판 돈카츠입니다. 철판위에 생양배추채와 같이 올라간 돈가스, 밥, 미소시루, 깍두기의 구성입니다. 미소카츠의 가장 큰 특징인 적된장 소스는 아직 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깍두기는 그냥 평범합니다.

싱싱한 양배추에 잘 튀긴 돈가스가 올라왔습니다. 돼지는 제주산 돼지를 사용한다고 하네요. 철판은 돈가스의 온도 유지와 퍼포먼스 용도입니다. 일단 철판이 있으면 열이 오래 남아서 따뜻한 돈가스를 오래 먹을 수 있지요.

또한 철판이라면 돈가스에 적된장 소스를 부을 때 지글지글 소스가 끓어오르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지요. 개점기간 한정인지 계속 그런지는 나고야 지점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소스는 나고야 본부 사장님께서 부어주셨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한국에서 직접 삼고초려를 하여 입점을 하였다고 하네요. 개점기간동안 사장님께서 가이드를 해주신다고 합니다.

소스를 부으니 치익하고 철판에 닿은 소스는 끓어오르면서 김이 확 올라옵니다. 눈도 즐겁고 소리도 즐거운 광경이지요. 먹기 전에 인상에 깊게 남았습니다. 일본식으로 두텁게 썰어놓은 돈가스에 한국식으로 미리 소스를 부어놓은 돈가스는 어떤 맛일까요.

가이드대로 첫번째는 그냥 먹어보았습니다. 소스 때문에 튀김옷이 분리가 잘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고기까지 소스가 스며들지요. 고기는 두툼하고 육즙이 잘 나오는게 식감이 좋습니다. 이전에 가본 지인 말로는 오히려 나고야보다도 고기 질이 더 좋은 것 같다는 평입니다. 한국에서 먹어본 돈가스 중에서 고기 질로는 상위권에 듭니다. 또한 적된장 소스는 달달하면서 짭짤한 맛을 지닙니다. 고소한 향도 약간 풍기고요. 흔히 말하는 단짠단짠 이런건 아니고 그냥 두가지 맛이 한번에 올라옵니다. 맛이 아주 진해서 양배추와 밥이 절로 넘어갑니다. 그야말로 밥도둑이지요. 의외로 이 맛에서 익숙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짜장면의 맛과 유사한 느낌입니다.

먼저 깨소금을 뿌려보았습니다. 고소한 향과 맛이 슬슬 올라옵니다. 단맛, 짠맛과 고소한 맛이 함께 어우러지는 셈이지요. 단순한 비유로 하면 몇몇 중국집에서 파는 견과류 짜장면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별 특색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이 가장 괜찮더군요. 짜장면에 고춧가루 뿌리는 느낌이지만 다릅니다. 그래도 소스의 베이스가 적된장이라서 그런지 돈가스를 먹으면서 약간 얼큰하다(?)는 인상이 남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느끼한 맛을 잡는 데는 중간에 고춧가루 뿌려먹으면 좋습니다.

또다른 매운맛이라면 연겨자이지요. 연겨자는 뿌리는 방식이 아니라 떠서 올리는 방식이라서, 개인적으로는 다른 양념에 비해서는 골고루 바르기가 불편하더군요. 스푼이 돈가스에 안 닿게 떨어뜨리기도 쉽진 않고요. 겨자 특유의 톡쏘는 맛이 돈가스에 더해져 인상이 강해집니다. 깔끔함과 매운맛을 느끼기에는 딱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겨자가 소스의 맛을 느끼는 데에 방해가 되어서 조금만 뿌리는 게 낫다고 봅니다.

밥은 평범한 흰쌀밥입니다. 젓가락으로 떠먹기는 좋습니다. 밥의 양이 남자 1인 기준으로는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무료로 추가가 되므로 밥이 모자라다 싶으면 추가해서 드시면 되겠습니다.

미소국은 진한 편이고 미역이 특히나 많이 있습니다. 먹는 재미도 있고 시원한게 마음에 들더군요,

계속 먹다보니 마지막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양념인 고춧가루와 연겨자를 각각 뿌려서 먹었습니다. 느끼하고 짜기도 하니 역시 매콤한 맛이 들어가야겠지요.

마지막은 밥 한 술 위에 양배추채, 그리고 돈가스 한 조각을 올리는, 카츠동 먹는 식으로 먹었습니다. 이렇게 한번에 먹어도 맛있더군요.

나고야의 명물인 미소카츠, 그리고 그 대표주자인 야바톤. 한국에서도 이제 나고야의 별미를 맛볼 수 있고, 그 맛은 충분히 만족합니다. 다만 판교가 개인적으로는 가기가 쉬운 곳도 아니고, 가격도 19,000원이라는 부담가는 가격이기 때문에, 이번 말고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니까 맛있긴 한데, 이거 먹으러 굳이 판교까지 가야하나 이런 생각. 서울에 진출하거나, 다음에 일본가서 먹는게 먼저일수도요.

이 날 판교의 하늘이 참 맑덥니다.